해피엔딩은 누구에게나 찾아올까
어릴 땐 나도, 다른 사람들도 모두 해피엔딩을 맞이할 줄 알았다. 어린 내 눈에 비친 어른들은 다들 자기 집이 있었고, 차를 몰았고, 가정을 꾸렸다. 나도 크면 당연히 그렇게 살 줄 알았다. 하지만 그 당연해 보이던 평범함 뒤에는 보이지 않는 고통이 숨어 있었다. 결실은 고통 속에서 피어난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No Pain, No Gain’이라는 흔한 격언을, 이제야 비로소 내 삶으로 이해한다. 예전에는 가진 것을 잃어야만 아픈 줄 알았다. 하지만 진짜 고통은 내가 간절히 바라던 것을 내 손으로 내려놓을 때 시작되었다. 오랜 바람을 스스로 접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쓰라리다. 끝내 이루지 못한 꿈이 평생 미련으로 남아 나를 괴롭힐 것이고, 그 꿈을 이룬 사람들 앞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질 테니까.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모든 일을 잘할 수도, 바라는 것을 전부 이룰 수도 없다. 누군가는 내가 헤매던 자리에서 눈부시게 빛날 것이고, 반대로 나는 누군가가 끝내 포기한 일을 해낼 수도 있다. 이 ‘차이’를 온전히 인정해야 비로소 내 걸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 재능이 있는 사람은 1의 노력으로 10을 앞서가지만, 재능이 없는 사람은 10을 쏟아부어도 10의 결과를 장담하지 못한다. 잘하는 일을 일찍 찾아낸 사람은 참 축복받았다. 남들보다 적은 힘으로도 쉽게 앞설 수 있으니까. 하지만 내가 간절히 잘하고 싶고 이뤄내고 싶은 일들은, 야속하게도 대부분 재능이 없어 몸부림쳐야 하는 일이다. 타고난 것이 없다면 남들보다 더 애쓰고, 그만큼 다른 것들을 더 많이 포기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원하는 곳에 닿기 위해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심지어 소중한 사람들마저 뒤로해야 한다. 아니, 기어이 내려놓아야만 한다. 꿈을 좇는 사람이 마지막에 웃는다고들 한다. 그 웃음 뒤에는 꿈 하나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내려놓아야 했던 수많은 취미와 사람들의 빈자리가 있었을 것이다. 삶의 모든 것을 걸고 정점에 오른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 일론 머스크 같은 거인이 될 생각도 없고, 그럴 수도 없다. 다만 나는,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고 온전히 만족할 수 있는 내가 되고 싶다. 해피엔딩은 가만히 기다리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찾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이제 내가 좋아하던 것들을 잠시 내려놓고, 더 나은 내일로 도약하려 한다. 내 삶에 온전히 만족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나만의 해피엔딩이 시작될 테니까. 그 장면에 닿기 전까지는, 절대 돌아오지 않겠다.